어떤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나오면서 주인에게 ‘감사합니다.’라고 했더니, 그 주인이 ‘감사는 제가 해야지요.’라고 말했다.
두 사람 다 감사치 않을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감사할 수 있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어떤 것의 대가를 지불할 때 그것을 얻거나 이용하는 데 따른 감사를 다 갚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해 보았는가?
우리가 평소 지불하는 값, 표현하는 감사나 칭찬 등은 과연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일까?
아무리 많이 낸다고 해도 감사를 다 갚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해 본 일은 없는가?
세상에서 감사가 사라져 가고 있다.
세상이 셈하는 가치는 그 존재에 대한 실제적 가치보다는 그것을 통하여 내가 얻는 이익의 양에 따라 결정되고 있으며, 자신의 주관적 판단이나 개인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의 크기가 감사의 조건이 되고 있다.
헬렌 켈러는 ‘3일 동안만 본다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내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유일한 소망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죽기 전에 꼭 3일 동안만 눈을 뜨고 보는 것이다.
만약 내가 눈을 뜨고 볼 수 있다면
나는 나의 눈을 뜨는 그 첫 순간
나를 이만큼 가르쳐주고 교육을 시켜준
나의 선생님 애니 설리번을 찾아가겠다.
지금까지 그의 특징과 얼굴 모습을
내 손끝으로 만져서 알던 그의 인자한 모습,
그리고 그의 아리따운 몸가짐을 몇 시간이라도 물끄러미 보면서
그의 모습을 나의 마음 속 깊이 간직해두겠다.
다음엔 나의 친구들을 찾아가 그들의 모습과 웃음을 기억하고,
그 다음엔 들로 산으로 산보를 나가겠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무 잎사귀들,
들에 피어있는 예쁜 꽃들과 풀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석양에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다.
다음날 이른 새벽에는 먼동이 트는 웅장한 장면을 보고,
아침에는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 오후에는 미술관,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또 하루를 지내고,
마지막 날에는 일찍 큰길가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들을 바라보고,
아침에는 오페라 하우스, 오후에는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감상하고
그러다 어느덧 저녁이 되면 나는 건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 한복판으로 나와서 네온사인이 반짝거리는 거리,
쇼윈도 위에 진열되어 있는 아름다운 상품들을 보면서 집에 돌아와
내가 눈을 감아야 할 마지막 순간에 나는 이 삼일 동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준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기도를 드리고
또다시 영원한 암흑세계로 들어 갈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모든 것들이 이 여인에게는 마지막 소원의 항목들이다.
우리가 피하려하고 때로는 우리의 불평의 원인이 되는 사소한 것들마저도 이 분에게는 죽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은 아름다운 모습들이다.
우리의 모든 형편이 감사의 조건임을 아는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내가 한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에게서 받지 않은 것이 있는가?
우리는 무존재였다.
흙이었다.
누구에게도, 어떤 일로도, 합당한 감사를 충분히 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았는가?
?????
하물며 하나님께랴.....